본 교육연구단 참여대학원생 유빙(박사과정) 씨가 참여한 책의 리뷰 기사입니다.
https://m.khan.co.kr/culture/culture-general/article/202110291108001#c2b
[경향신문] 넘을 문턱이 너무 높은 요즘 청년, 국경 너머라고 다를까···‘문턱의 청년들’
이혜인 기자 hyein@kyunghyang.com
2021-10-29 11:08 입력 2021-10-29 21:19 수정
문턱의 청년들
조문영 엮음|책과함께|420쪽|2만원
중국의 대학 입시인 가오카오를 치르는 학생들. 책과함께 제공
중국의 대학 입시인 가오카오를 치르는 학생들. 책과함께 제공
2014년 서울 용산구 용산고등학교에서 CJ그룹 채용시험에 응시한 취업 준비생들. 홍도은 기자
2014년 서울 용산구 용산고등학교에서 CJ그룹 채용시험에 응시한 취업 준비생들. 홍도은 기자
한국 미디어에 종종 등장하는 중국 청년의 이미지는 과격하거나 납작할 때가 많다. 김치와 한복 등 한국 문화가 중국에서 기원했다고 인터넷상에서 억지를 부리는 20~30대 애국주의자 ‘분노청년’의 이미지가 대표적이다. 한국 아이돌을 좋아하는 중국 팬들의 극성스러운 행각도 자주 보도된다. 아이돌이 타는 항공편을 미리 알아내 옆 좌석을 한꺼번에 예약했다가 불시에 취소한다거나, 위험천만한 추격 택시를 타고 아이돌의 일정에 따라붙는 사생팬들의 일화다. 조문영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확실히 근래 발생한 사건들이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빠르게 공론화되면서 중국의 부상을 ‘위협’으로 보는 시선에 불을 지폈다”고 말한다.
분명한 것은 한국에도, 중국에도 서로 비슷비슷한 청년들이 많이 산다는 것이다. 이들의 삶은 꽤 비슷하고, 고통의 종류나 본질도 맞닿아 있는 부분이 많다. 한·중 청년들의 일상을 담은 <문턱의 청년들>의 저자 중 한 명이자 엮은이인 조 교수는 “내전 같은 돌발 사태가 아니라면, 국경 너머의 삶은 의외로 비슷하다”며 “오늘날 청년 세대는 국경에 온전히 구속되지 않는 다양한 연결성을 보인다”고 말한다. <문턱의 청년들>은 13명의 연구자가 2017년부터 3년 동안 한·중 청년들의 일상을 주제별로 파고든 결과물이다. 주거, 교육, 취업과 노동, 창업, 연애와 결혼, 인터넷문화 등 양국 청년들의 삶에서 주로 등장하는 주제들을 다뤘다. 두 나라에서 살아가는 청년들이 국경이라는 주권적 경계뿐 아니라 자신을 가로지르는 여러 경계들과 씨름하면서 만들어내는 궤적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전 세계적인 ‘미친 부동산의 시대’에 주거 불안은 청년들이 겪는 가장 대표적인 어려움이다. 책은 서울에 사는 청년 여성들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비혼 여성인 은수, 재이, 승효 세 사람은 주거공동체를 이뤄 함께 살고 있다. 이들의 주거 변천사는 눈물겹다. 지방에 본가가 있는 은수는 서울에 있는 대학 진학 후 기숙사, 원룸, 친구 집을 전전하며 매년 이사를 해야 했다. 자신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엄마와 공간적 독립이 필수적이던 재이는 주거공간을 제공하는 일자리를 따라 제주도까지 내려갔다. 천신만고 끝에 세 사람은 각자 ‘풀’로 대출을 받아 서울 관악구의 한 빌라 스리룸에서 같이 살게 됐지만, 치솟는 집값으로 인해 “정말 자고 일어나면 아파트가 멸종해 있고 들어갈 수 있는 데가 아무 데도 없”는 현실에서 간신히 버티고 있다.
넘을 문턱이 너무 높은 요즘 청년, 국경 너머라고 다를까···‘문턱의 청년들’
한국 사회는 청년의 주거 불안 문제를 취업과 결혼 등 생애경로를 거치며 점차 해소될 사안으로 대해왔으나, 지금의 청년들에게는 비혼이 기본값이고 결혼은 이례적 이벤트다. 세 청년의 주거공동체를 들여다본 류연미 연구자(서울대 사회학과 박사과정)는 “(이들의 사례에서) 드러나듯이 주거생활에서는 어디에 사는가의 문제만큼이나 누구와 사는가의 문제 역시 중요하다”고 짚는다. 청년들의 주거공동체는 “주거와 노동과 정동과 소망과 그 외의 수많은 삶의 차원들을 협상하면서 도출해낸 생애전략에 가까웠다”고 했다.
서울에 집 한 채를 가지고 안착하는 것이 어렵듯이, 베이징 같은 중국 대도시에서 청년 세대가 안정적 주거공간을 가지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리나는 베이징의 교육 컨설팅 회사에 근무하는 30대 여성이다. 그는 산둥성 출신으로 동향의 남편과 결혼해 베이징의 임대주택에 살고 있다. 교육 수준도 높고 비교적 안정적 직업을 가지고 있으나, 조만간 베이징을 떠나야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린다. 중국에는 한국의 주민등록 제도와 유사한 거주지 등록제인 호구(戶口) 제도가 있는데, 리나가 베이징에 정착하려면 ‘영끌’을 해서 집도 사고 호구도 받아야만 한다. 리나와 같은 30대 여성 3명의 사례를 연구한 김기호 경희대 국제대학 겸임교수는 “실제 중국 대도시에서 청년 세대가 결혼을 하고 자녀를 양육하며 가정을 이루는 과정은 한국에서보다 더 절박하고 위태해 보인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같은 주거 문제를 대하는 중국 청년들의 태도는 눈여겨볼 만하다. 한국 사회가 ‘능력주의’라는 키워드로 경제적 불평등과 차별을 정당화하듯, 중국 청년들 역시 호구 제도에 불만을 느끼면서도 능력에 따른 차별이나 불평등은 합리적이라는 시각을 일부 내재화하고 있다. 왕핑은 동북 지역 출신으로 베이징 호구를 받고 베이징 북쪽 외곽 화이러우구에 집을 하나 장만한 청년이다. 베이징에서는 주택 소유자가 좋은 학군을 배정받는 데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왕핑은 이를 옹호하며 “능력 있는 부모가 자녀에게 좋은 교육을 시킬 수 있는 것이 공평한 방식”이라고 말한다. 김 교수는 “2019년 내가 베이징에서 만난 서른 명이 넘는 중국 청년들 중에서 ‘왜 주택 소유 여부가 자녀 교육 기회의 기준이 되어야 하는가?’라는 문제의식에 대해 진지하게 공감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전한다. “탈사회주의 시대의 중국 사회에서 신자유주의적 능력주의는 사회주의적 제도의 탈을 쓰고 있기에 무엇이 평등하고 무엇이 불공평한 것인지는 더욱 혼란스러워진다.”
양국 청년들은 공히 산업 구조의 변화로 플랫폼 노동판에 던져졌다. 책에서는 한국의 사례로 배달 플랫폼에서 배달 노동을 하는 청년들을 다뤘다. 2010년 이후 스마트폰이 확산되면서 배달대행업이 ‘플랫폼 산업’의 형태로 진화했다. 독립연구자 채석진은 배달 노동을 하는 세 명의 청년을 만났다. 청년들은 “하루 16시간씩 노예짓 했던 본업”에 비하면 일할 타이밍을 자유롭게 정할 수 있고, “언제 어디서나 원할 때 원하는 만큼” 일할 수 있다는 장점도 전한다. 하지만 배달 노동은 본질적으로 분절되고 파편화된 노동 형태라는 속성을 안고 있다. 배달 노동자들은 플랫폼의 단가 경쟁 속에서 신규 노동력에 대한 적대와 혐오를 보이며, 전업·부업이나 숙련·비숙련의 구도로 위계를 형성하기도 한다. 저자는 라이더들 간에 공유되는 ‘능력주의’를 짚으며, “배달 플랫폼 노동은 기존의 위계적이고 억압적인, 차별적인 공기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고 말한다.
한국의 아프리카tv와 비슷한 중국의 후야tv에서 쇼장방송을 하고 있는 청년들. 책과함께 제공
한국의 아프리카tv와 비슷한 중국의 후야tv에서 쇼장방송을 하고 있는 청년들. 책과함께 제공
중국의 청년 여성들은 쇼장방송(인터넷 개인방송) 공간으로 몰린다. 2016년 인터넷 개인방송업계에 엄청난 자금이 투입되며 일종의 일자리 창출이 가능했다. 스타가 돼 손쉽게 돈을 벌고자 하는 현대인의 욕망도 분명 있다. 하지만 쇼장방송을 하는 여성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본 연구자 유빙(서울대 인류학과 박사과정)은 “중국의 젊은 여성의 자아의식이라는 내적 변화와 사회적 환경이라는 외적 측면에서 접근해보고 싶다”고 말한다. 한국보다는 조금 느리지만 중국에서도 비혼을 택하는 여성이 많아지고 있다. 비혼 가구로 남기 위해 여성들은 경제적 독립을 추구하지만, 질 좋은 일자리는 많지 않다. 유 연구자는 2018년 중국 여성의 평균 임금은 6497위안(약 115만원)으로 남성의 78.3%라는 사실을 전하며 “2016년 1월1일부터 ‘전면적 두 자녀 정책’이 시행되면서 여성은 정책 개방 이전보다 구직할 때 훨씬 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한다.
청년이 겪는 문제들을 돌파해 사회를 변화시켜보려는 양국 청년들의 모습도 닮아 있다. 윗세대에서는 정치를 통한 투쟁이 사회변혁의 수단으로 여겨졌다면, 현재 청년들은 ‘소셜벤처’와 같은 기업활동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란 꿈을 품는다. 책에서는 성수동 소셜벤처와 중국 선전시 화창베이 창업단지, 중국과 대만의 접경도시인 샤먼 등을 찾아 청년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중국 청년들은 ‘선한 비즈니스’를 추구하는 ‘기업가 정신’이야말로 권위적인 정부와 갑갑한 교육 제도를 넘어 사회혁신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벤처를 하는 많은 청년들도 위계적인 기업문화와 ‘위선적인’ 이전 운동권 세대를 넘어서는 합리적 기업의 시대를 그린다. 그런데 양국 청년들이 확장 중인 소셜벤처의 세계는 “엇비슷한 교육자본과 경제자본을 갖추고, 특유의 라이프스타일로 교감할 수 있어야 ‘우리’로 인정받고, 수평적이면서 동시에 배타적인 커뮤니티에 진입할 수 있다”(조문영 교수)는 한계도 명확하다.
책의 제목인 <문턱의 청년들>은 결혼, 취업 등 사회인이 되기 위한 관습인 ‘문턱’을 충분히 경험하지 못하고 그에 머물러 있는 한·중 청년들의 모습을 뜻한다. 한국과 중국이 가진 여러 차이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양국 청년들을 횡단적으로 이해하는 일은 중요하다. 조 교수는 “글로벌 정치경제의 불안정성, 첨단기술의 발전과 노동 유연화, 초국적 교류와 배타적 민족주의의 동시 성장이라는 공통적 흐름과 복잡하게 얽히면서 한·중 청년들의 감각, 인식, 실천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좀 더 면밀히 들여다볼 것을 제안한다. 분노청년, 이대남·이대녀, MZ세대 등 납작한 단어들에는 절대 담길 수 없는 청년들의 삶이 책 속에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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