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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인류학자 박한선 교수가 본 인간의 결심
2023/03/26

 

동아일보오피니언

새해 목표 ‘작심삼일’ 피하는 4가지 방법[진화인류학자가 본 인간의 결심]

박한선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

입력 2022-12-30 03:00업데이트 2022-12-30 03:25

 

https://www.donga.com/news/Opinion/article/all/20221229/117218339/1

 

박한선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

 

《2023년 계묘년 새해가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장삼이사들은 올해도 새해 계획 세우기에 여념이 없다. 새벽 조깅, 다이어트, 영어 공부…. 거창한 계획으로 다이어리를 빼곡히 메우면서도 우리는 본능적으로 느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계획은 잊히고 다시 평소 여느 날로 돌아가리란 것을. 매번 지키지 못할 계획을 세우고 허물기를 반복하는 굴레를 멈출 순 없는 것일까.》

 

새장에 갇힌 철새는 이주 시기가 되어도 날아갈 수 없다. 미리 살을 찌우며 준비했지만, 소용이 없다. 이주를 못 하는 철새들은 안절부절못하며 불안해한다. 잠도 잘 못 잔다. 이를 이망증(移望症)이라고 한다. 매년 새해를 맞는 우리도 비슷하다. 대양 횡단의 소망으로 설레는 철새처럼 새로운 자신, 새로운 관계, 새로운 미래를 향한 소망으로 들뜨는 동시에 불안감에 휩싸인다.

 

하지만 철새도 인간도 계획을 성취하는 개체는 소수다. 철새의 절반이 이주 중에 사망한다. 미국 스크랜턴대 존 노크로스의 연구에 따르면 새해 계획을 6개월 이상 지속하는 사람은 40%에 불과하다. 계획은 변화를 향한 오랜 진화적 본성과 강력한 문화적 관습이지만 우리의 삶은 좀처럼 계획대로 되지 못한다. 이유가 뭘까?

 

무턱대고 시작부터 해선 안된다

 

 

계획 실패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준비 부족이다. 철새는 장거리 이주 기간에 신진대사율이 몇 배 이상 증가한다. 이 때문에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 미리 포동포동 살을 찌우고, 중간중간 보급도 받아야 한다. 준비가 부족한 철새는 뜻을 이루지 못한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계획을 달성하려면 준비부터 해야 한다. 아무 준비 없이, 느닷없이 ‘마라톤 완주’나 ‘토익 만점’을 결심하면 곤란하다. 밀과 보리는 원래 가을에 미리 파종하는 작물이다. 작년에 아무 준비도 안 했는데, 올해 수확이 있을 리 없다.

 

 

 

 

 

준비를 미처 못 했다면 어떡해야 할까? 방법은 있다. 바로 봄에 파종하는 춘파형(春播形) 밀, 춘파형 보리다. 시간이 촉박하지만 세심하게 가꾸면 제법 성공할 수 있다. 그러나 더 큰 목표를 꿈꾼다면 올 한 해를 준비 기간으로 삼아보자. 2024년의 계획을 미리 세우고, 이를 위해 1년 동안 차근차근 바닥을 다지는 것이다. 진학, 이직, 유학, 결혼, 주택 구입, 심지어 날씬한 몸을 위한 다이어트도 제대로 하려면 몇 달, 몇 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남을 의식해 목표를 잡지 말라

 

 

우리의 목표는 크게 두 축으로 나뉜다. 첫째, 숙달 대 수행. 예를 들어 ‘영어에 능통하고 싶다’는 것은 숙달 목표, ‘높은 토플 성적을 얻고 싶다’는 것은 수행 목표다. 둘째, 접근 대 회피. ‘몸짱을 향해 운동한다’면 접근 목표, ‘늘어진 뱃살을 피하고 싶다’면 회피 목표다.

 

인간은 복잡한 사회를 이루고 사는 동물이다. 그래서 남에게 보이는 결과(수행)에 집착하고, 타인의 부정적 평가를 줄이는 데(회피) 더 큰 관심을 보인다. 그러나 캐나다 맥길대 리처드 쾨스트너 등의 연구에 의하면 이러한 회피 지향형 수행 목표는 새해 결심으로 적당하지 않다.

 

다시 철새 이야기로 돌아와서 철새는 남에게 인정받으려고 비행하지 않는다. 기록을 경신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생존과 번식을 위한 접근 지향형 수행 목표를 위해 긴 거리를 날아간다. 우리의 새해 목표도 그래야 한다. 이력서에 올릴 영어 성적이나 인스타그램에 올릴 날씬한 몸 같은 회피 지향형 수행 목표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지속성 측면에서 새해 목표로는 바람직하지 않다.

 

잠시 중단하는 것도 괜찮다

 

 

목표의 끝에 도달하려면 어려운 시기를 견딜 여유가 있어야 한다. 흔히 이러한 여유 없이 에너지의 최대치를 끌어 모아야 겨우 실천할까 말까 한 난도 높은 목표를 새해 계획으로 세우는 경우가 많다. 패기는 좋다. 하지만 ‘매일 2km 달리기’ 같은 목표는 달성하기 매우 어렵다. 하루만 실패해도 자책감이 들어 모처럼의 결심은 유야무야 사라진다. ‘매주 14km 달리기’나 ‘매달 60km 달리기’ 등의 목표도 곤란하다. 며칠만 방심해도 이후의 과업이 막대하게 불어난다. 다이어트나 운동 계획이 실패하는 주된 이유다.

 

철새의 비행은 논스톱이 아니다. 악천후에도 무조건 ‘전진 앞으로!’를 외치지 않는다. 폭풍우가 몰아치면 중간 기착지에서 몸을 피하며 때를 기다린다. 우리의 목표도 마찬가지다. 강박적 목표 달성으로 기네스북에 오르려는 것이 아니라면 어려운 때는 잠시 쉬어가도 좋다. 다이어트를 목표로 세웠다고 해서 일 년 내내 풀만 먹고 살아야 한다면 십중팔구 작심삼일이다.

 

새해 첫날이 아니어도 좋다

 

 

철새의 이주 환경은 천지개벽했다. 일부 철새는 하늘의 별을 보며 경로를 찾지만 도시의 밝은 빛이 종종 혼란을 일으킨다. 그 결과 빙글빙글 같은 곳을 돌다가 추락하기도 한다. 우리도 그렇다. 현대인의 삶은 매일 조변석개하지만 연중 변동은 별로 없다. 우리 선조의 삶은 이와 반대였다. 하루의 일상은 비슷하지만 연중 변화는 확실했다. 정착 농경민이라면 절기의 변화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파종과 추수의 최적 시기를 정해야 하지만 현대인의 일상은 1월이나 7월이나 비슷비슷하다.

 

그러니 1월 1일에 집착하지 말고 새해 계획 시계를 유연하게 잡아보자. 우리의 달력은 춘하추동의 연중 주기를 따르는 농사용 달력이다. 현대인의 삶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교사라면 학기 단위, 군인이라면 임무 기간 단위, 스타트업 회사를 다닌다면 일일 단위로 목표를 잡아보자. 올해 새해 결심은, 계묘년 내내 끊임없이 유연하게 수정하며 성취해 나가길 바란다.

 

기원전 3000년경 이집트에서 새해는 지금의 7월 무렵이었다. 기원전 4000년경 고대 바빌로니아인은 현재 기준 3월경에 새해를 맞았고, 기원전 3000년경 중국 은나라인은 2월경 새해를 축하했다. 1월 1일의 시작은 기원전 46년이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일 년을 365일로 못 박았다. 이후 약간의 변화가 있었지만, 로마의 달력을 여전히 따르고 있다.

 

1월의 영어 이름은 로마의 신 야누스(Janus)에서 유래했다. 머리의 앞뒤에 얼굴이 있는데, 시작과 끝을 상징한다. 뒤통수의 얼굴은 과거를, 정면의 얼굴은 미래를 바라본다. 과거를 딛고 미래로 나아가는 새해가 곧 밝아온다. 타인의 평판에 집착하는 계획, 겉보기만 좋은 계획, 계획을 위한 계획이라는 강박을 버리자. 충분히 준비된 계획, 진정한 성장을 위한 계획이 필요하다. 실천 가능한 목표를 세우고, 유연하게 조정하며 끊임없이 성취해 나가자.

 

박한선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