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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인류학 아버지’ 레비 스트로스 100세로 잠들다
2020/01/20

https://h2.khan.co.kr/201911050005001

 

[오래 전 ‘이날’]11월5일 ‘현대 인류학 아버지’ 레비 스트로스 100세로 잠들다

수정2019-11-05 16:13입력시간 보기

1959년부터 2009년까지 10년마다 경향신문의 같은 날 보도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매일 업데이트합니다.

 

[오래 전 ‘이날’]11월5일 ‘현대 인류학 아버지’ 레비 스트로스 100세로 잠들다

■2009년 11월5일 ‘현대 인류학의 아버지’ 100세로 잠들다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 중 하나였던 ‘구조주의’. 구조주의를 제창한 학자로는 소쉬르, 미셸 푸코, 자크 라캉 등이 있는데요 오늘 소개할 이분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프랑스 석학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입니다. 10년 전 오늘, 경향신문에는 레비 스트로스가 100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당시의 보도를 통해 레비 스트로스의 삶과 업적에 대해 간략하게 알아봅니다.
 

[오래 전 ‘이날’]11월5일 ‘현대 인류학 아버지’ 레비 스트로스 100세로 잠들다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1908-2009)는 벨기에 태생의 유대인이라고 합니다. 프랑스로 이주한 뒤 파리 소르본 대학에서 철학과 법학을 공부했고 사회당 국회의원의 비서를 지내다 1931년 프랑스 철학교수 자격시험에 합격했습니다. 1935년엔 브라질 상파울루 대학 사회학과 교수직을 수락하면서 현장조사를 겸한 본격적인 인류학자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레비 스트로스의 구조주의-의미와 구조를 둘러싼 논쟁을 중심으로’, 윤성우, 철학과 현실)
 

경향신문에 실린 ‘’현대 인류학의 아버지‘ 100세로 잠들다’에 따르면, 그는 남미 원주민의 문화를 현지조사한 후 친족이론·신화분석 등의 분야에서 구조주의를 제창하며 사상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그런데 ‘구조주의’란 무엇일까요. 여러가지로 정의가 가능하겠지만, 이 기사에는 ‘각 사회의 형태는 다양하지만 인간의 행동과 사고에는 공통적인 논리적 하부구조가 있다는 이론’으로 소개돼 있습니다. 레비 스트로스의 구조주의는 서구 유럽문화가 우월하다는 관념에 대항하는 논리를 제공해 반식민주의의의 지지를 받았다고 합니다. 레비 스트로스가 학계를 넘어 대중적 지지를 얻은 이유입니다.
 

[오래 전 ‘이날’]11월5일 ‘현대 인류학 아버지’ 레비 스트로스 100세로 잠들다

같은 날 경향신문의 칼럼 ‘여적’(제목 ‘슬픈열대’)에는 레비 스트로스의 학문세계가 그의 저서 <슬픈 열대>를 중심으로 조금 더 쉽게 서술돼 있습니다. '슬픈열대'는 레비 스트로스가 남미 오지의 소수부족 지역을 여행하며 쓴 책입니다. 서양은 곧 이성이자 정의이며 선이고 서양에 익숙지 않은 부족들의 문화는 야만으로 보는, 서구 중심주의의 허구를 탁월한 글솜씨로 풀어내 20세기 최고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고 합니다.
 

여적 <슬픈 열대>에 따르면, 레비 스트로스는 문화 비교연구를 통해 문명과 야만을 구별할 것 없이, 특정한 문화는 그렇게 나타날 수 밖에 없는 어떤 배경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런 작업은 ‘보이지 않지만 현상을 지배하는 총체적인 실체가 따로 있다’는 논리를 기반으로 하는데, <여적>에서는 이것이 바로 구조주의라고 말합니다.
 

구조주의의 등장은 ‘의심하는 존재로서의 나’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하는 데카르트적 인식론을 뒤엎는 것이었습니다. ‘나’라는 주체가 사실은 배후에 작용하는 어떤 구조의 산물이라면, 그래서 ‘나’는 꼭두각시일 뿐이라고 한다면 ‘나’의 의지, 주체성은 원래 존재하지 않았던 것일까요. '여적'은 바로 이점이 구조주의가 남긴 한계였다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인간의 의지와 욕망의 중요성을 재발견한 포스트 모던, 탈구조주의, 해체주의의 시대가 온 것이고요.
 

[오래 전 ‘이날’]11월5일 ‘현대 인류학 아버지’ 레비 스트로스 100세로 잠들다

레비 스트로스는 2009년 타계했는데, 사망일자가 명확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가 속해있던 프랑스 학술원이 구체적인 사망원인과 사망일은 공개하지 않고 그가 타계했다는 사실만 2009년 11월3일에 세상에 알렸습니다.
 

레비 스트로스는 한국과도 짧은 인연이 있습니다. 1981년 10월 방한해, 한국정신문화원에서 세미나를 가졌고 굿을 지켜보았으며, 경주 일대 답사와 통도사 방문을 했습니다. ‘레비 스트로스와 한국’(이광규, 서울대·인류학)이라는 논문을 보면, 경주에 갔을 때 레비 스트로스는 여유시간이 생기자 ‘시장 구경을 하자’고 먼저 제안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급히 수소문해서 소시장을 갔다고 합니다.
 

1981년 방한 때 경북의 한 소시장에 들른 레비 스트로스 | 경향신문 자료사진

1981년 방한 때 경북의 한 소시장에 들른 레비 스트로스 | 경향신문 자료사진

레비 스트로스의 ‘서민문화’에 대한 관심은 그가 한국을 떠나면서 남긴 메시지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광규 교수는 논문에서 레비 스트로스가 “(지방답사의 의견으로) 한국이 급변하는 사회에서도 일부에서는 전통문화를 보존하려는 열의가 많으나 이것은 유교나 불교 등 상층문화에 치중된 감이 있으니 귀족문화 못지 않게 서민문화를 보존할 것” 등을 당부했다고 합니다.
 

레비 스트로스의 1981년 방한 때 주요 일정 기록에 남아있진 않지만 경향신문에도 들른 모양입니다. 당시 경향신문을 방문한 그의 사진이 남아있습니다.
 

1981년 10월 경향신문을 방문한 레비 스트로스 | 경향신문 자료사진

1981년 10월 경향신문을 방문한 레비 스트로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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