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이 만나고 섞여 스펙터클한 ‘마카오 맛’에 군침 베팅
미식 도시로 탈바꿈하는
카지노의 도시에 창의적인 음식들
맛있고 저렴한 값으로 미식탐방가들 유혹
초호화 호텔엔 미쉐린 ★★★ 레스토랑 즐비
13만~14만원대 점심 코스 단연 ‘가성비 갑’
동서양의 조리법이 절묘하게 버무려진
광둥 레스토랑과 매캐니즈 맛집까지
2박3일 일정도 빠듯해
주말에 가볍게 다녀올 수 있는 미식여행지를 추천해달라는 요청을 많이 받는다. 내 답은 항상 마카오다. 3시간 반만 날아가면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의 음식이 융합된 놀라운 요리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 종로구만 한 좁은 땅에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 19곳이 밀집해 있는 것도 놀라운데, 다른 어느 나라보다 가격이 합리적이고 접근성도 좋다. 442년간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은 탓에 남유럽 풍경이 스며든 거리는 슬슬 산책하며 소화를 시키기에도 제격이다. 또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31곳이나 무료로 볼 수 있다. 개성만점의 호텔들은 어찌나 많은지, 에펠탑 속에서 식사를 할 수도 있고, 분수쇼가 벌어지는 호수를 가로지르며 케이블카를 타고 호텔로 들어갈 수도 있다. 종교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성모 마리아와 예수를 중국식으로 표현한 가톨릭 유물과 김대건 신부의 흔적을 찾을 수 있고, 와인 애호가라면 포르투 와인과 비뉴 베르드 와인(포도가 초록빛일 때 수확해 만든 와인으로 연둣빛 색깔을 띠어 그린 와인이라고 부른다)을 저렴하게 맛볼 수 있다.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즐길 수 있는 테마가 많아 가족여행지로도 아주 좋다. 한국 여행자들은 대부분 홍콩에서 며칠 머물면서 마카오는 당일치기로 다녀오는데, 마카오는 2박3일도 충분한 곳이다. 미식가라면 일주일을 보내도 아쉬울 것이다.
■ 도박도시에서 미식도시로
그런데 마카오는 영화 <도둑들>에 나오는 유명한 카지노 도시 아닌가. 갱들과 마약이 판치는 위험한 곳은 아닐까. 마카오가 중국에 반환되던 해인 1999년 이전에 방문했던 사람들은 세기말의 퇴폐적 분위기를 풍기던 시절을 회상하곤 한다. 20년 만에 마카오는 인구 64만명에 연간 방문객 3000만명이 찾는 매력적인 관광지로 변모했다. 마카오의 미식도시 브랜딩 관련 연구들에 의하면, 마카오는 도박의 도시라는 오래된 이미지를 버리고 새 이미지를 갖추기 위해 노력해왔다. 세계의 도시들이 독특한 정체성을 창조하고 경쟁력 있는 브랜드를 만들어내는 시대, 마카오는 미식도시로 방향을 잡았다. 그리고 2017년 마카오는 유네스코 ‘미식창의도시’로 선정됐다.
마카오의 음식은 맛있고 창의적일 뿐 아니라 인심도 후하다. 음식 가격과 교통비가 국민소득에 비해 아주 저렴하다. 라스베이거스를 뛰어넘는 카지노 산업 덕분이다. 정부는 카지노에서 거둔 세금으로 2008년부터 매년 주민들에게 현금보너스까지 지급하고 있다. 2018년에는 영주권을 가진 주민에게 약 132만원, 영주권이 없는 주민에게 80만원의 현금보너스가 지급됐다. 외국인에게는 왜 현금보너스가 없느냐고 아쉬워하지 말고, 마카오관광청에서 무료로 나눠주는 마카오 여행 가이드북 ‘마카오 도보여행’과 ‘마카오 미식탐방’을 꼭 챙기자. 이 책만 있어도 마카오를 걸으며 미식탐방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다. 대형 카지노들이 마카오 전역에 무료로 운행하는 셔틀버스를 타는 것도 추천한다.
■ 가성비 최고의 스타 레스토랑
마카오 미식여행을 떠난다면 가장 먼저 예약해야 할 곳은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 두 곳이다. 1순위로 추천하는 곳은 내가 미식여행 인솔 때마다 가는 곳이다. 첫날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찾아가는 그곳, ‘로뷔숑 오돔’(Robuchon au Dome)이다. 그랜드 리스보아 호텔의 꼭대기층인 39층까지 올라가 돔 부분만 운행하는 엘리베이터로 갈아타는 순간, 누구나 주변에 쌓인 와인병을 보며 탄성을 지른다. 43층에 도착하면 마카오가 내려다보이는 전망, 홀 중앙에 빛나는 스와로브스키의 샹들리에, 그랜드 피아노에서 흘러나오는 라이브 음악과 만난다. 남녀노소 모두 황홀해하는 풍경이다. 그리고 런치세트의 가격에 감동받는다. 애피타이저, 수프, 두 가지 메인요리, 디저트의 5코스에 커피나 차, 아뮈즈부슈(식전 한입 먹거리)까지 모두 포함한 가격이 888파타카(약 13만원)다. 와인 재고가 워낙 방대해 가격도 저렴한 것으로 유명한데, 4잔 페어링이 520파타카(약 7만6000원)다. 주문을 마치면, 미쉐린 스타를 가장 많이 받은 전설적인 셰프 조엘 로뷔숑의 레스토랑답게 보기만 해도 만족스러운 서비스가 시작된다. 일단 온갖 빵이 매달려 있는 카트가 나온다. 직원은 가염 버터와 무염 버터 큰 덩어리를 들고나와 뜨거운 물에 적신 스푼으로 서빙해준다. 다섯 코스 모두 개성 넘치는 식기에 담겨 나온다. 디저트까지 마친 뒤, 치즈 플레이트를 추가했을 경우 치즈 카트가 나오고 이후에는 형형색색의 초콜릿과 작은 케이크 등이 가득한 프티푸르 카트가 나온다.
2순위로 추천하고픈 곳은 또 하나의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인 ‘디 에이트’(The Eight)다. 로뷔숑 오돔과 마찬가지로 그랜드 리스보아 호텔 안에 위치하고 있다. 역시 디너에 비해 합리적인 가격의 런치세트를 추천한다. 황금빛 숫자 8이 가득한 휘황찬란한 인테리어 속에서 고급스러운 광둥요리를 맛볼 수 있다. 7코스에 차까지 포함한 시그니처 세트 메뉴가 약 14만원.
■ 음식으로 이룬 동서양의 화합
마카오 여행을 계획한다면,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 홈페이지를 방문해보면 좋다. 축제가 많은 11월에는 어떤 행운이 기다릴지 모른다. 나는 2018년 11월 미식투어팀과 함께 2스타인 ‘더 테이스팅 룸’(The Tasting Room)을 방문했다. 2스타 프렌치 셰프가 3스타 이탈리안 셰프를 초청해 이벤트를 여는데, 단 이틀간 소수정예의 손님만 받는다는 소식을 읽자마자 바로 예약해버렸다.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반짝이는 인테리어, 그날 마실 와인별 잔을 세팅해놓고 잔 밑에 와인 이름을 프린트해놓는 섬세한 준비, 셰프들이 직접 사인을 남긴 메뉴판을 보는 순간부터 이미 반했다.
맛도 맛이지만, 디저트 코스에서 셰프가 직접 나와 손님 한 명 한 명의 손 위에 디저트 일부를 올리고 그 위에 크림을 짜주는 재미 요소까지 완벽했다. 이런 화려한 디너를 즐기고 싶다면 프렌치나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중심으로 찾아보면 되고, 마카오 현지 음식을 최대한 즐겨야겠다면 광둥 레스토랑을 중심으로 찾아보면 된다. 마카오는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광둥요리를 내놓으면서도 중국이나 홍콩에 비해 가성비가 뛰어난 곳이다.
꼭 한 번은 ‘매캐니즈’(Macau+Chinese·마카오+중국) 레스토랑을 들르기 바란다. 400여년 전 마카오에 살게 된 포르투갈인들이 어쩔 수 없이 마카오 식재료로 포르투갈 요리를 만들면서 탄생한 독특한 음식들을 맛볼 수 있다. 예를 들면 그릴에 구운 닭에 모잠비크의 피리피리 고추로 만든 소스를 얹어 먹는 아프리칸 치킨, 토마토 퓌레에 새우·홍합·오징어 등 해물을 넣고 끓인 해물밥, 광둥 스타일로 데친 채소에 커리와 코코넛 밀크를 더한 코코넛 채소찜 등이 대표적이다. 아마사원 바로 옆에 있어 유명한 고급스러운 로컬 레스토랑 ‘아 로차’(A Lorcha)에서 위에 언급한 요리 한 접시를 2만5000원 정도에 판매한다.
■ 또 가고 싶은 도시
마카오에서는 호텔 조식은 건너뛰어도 좋다. 완탕면을 먹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세나두 광장에 면해 있는 ‘웡치케이’(Wong Chi Key) 레스토랑에서 아침을 먹고 하루 관광을 시작해보자. 첫날은 3대를 내려온 꼬들꼬들한 노란 에그누들과 짙은 새우 맛이 우러난 국물의 새우 완탕면을 먹고, 다음날에는 새우에서 뽑아낸 작고 붉은 알을 볶아 에그누들에 비벼 먹는 하찌로우면(새우 알 비빔면)을 먹길 권한다.
유명한 마카오의 디저트들은 식사 사이사이에 산책을 하면서 먹으면 된다. 포르투갈 본토보다 맛있다는 에그타르트, 짙은 우유의 향과 질감이 기막힌 우유 푸딩, 아몬드 함량이 높아 극강의 고소함을 맛볼 수 있는 아몬드 쿠키는 꼭 먹어보길 바란다. 여력이 되면 길거리 음식인 꼬치, 바삭한 바게트 사이에 숯불 돼지고기만 집어넣은 마카오식 고기버거 쭈빠빠우, 길거리에서 시식용으로 나눠주는 육포까지 놓치지 말자.
마카오관광청에서 제작한 미식탐방 가이드북은 이렇게 말한다. “유럽과 북아프리카, 인도의 맛과 조리법이 융합된 포르투갈 요리는 마카오에서 다시 중화요리와 조우한다. 중국 4대 요리 중 가장 발달한 광둥요리가 ‘육해공’의 갖은 재료, 여러 대륙을 넘나드는 다양한 조리법과 교류한 끝에 마카오의 스펙터클한 맛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수세기 동안 이렇게 이질적인 것들이 만나고, 섞이고, 넘나들며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음식문화가 어디에 또 있을까. 마카오가 더욱 매력적인 것은 이런 맛이 완성된 무언가가 아니라는 점이다. 최근 들어 더욱 급속도로 밀려드는 글로벌 자본, 홍콩과 연결된 다리를 보노라면 앞으로 마카오가 또 어떤 새로운 요소들을 받아들여 새로운 맛을 만들어낼지 궁금해진다. 마카오는 계속 가게 될 것 같다.
덕업일치를 꿈꾸는 관광인류학자. KBS 여행 전문 팟캐스트 <여행상상> 진행자. 여행작가·해외여행인솔자로 70여개국을 다니며 미식, 스쿠버다이빙, 자전거, 요가, 순례 등 다양한 테마여행을 탐구했다. 서울대 인류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한국인의 해외관광문화에 대한 박사학위 논문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