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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글 내용
한국의 알피니스트, 아직 살아 있다 ⑲ 오영훈-등반은 작은 에피소드들의 집합
2020/12/10

본 학과 석사과정을 졸업한 인류학자이자 알피니스트 오영훈 박사에 대한 글과 등반이라는 행위에 대한 인류학적 성찰을 읽을 수 있습니다.

 

 

기사 원문보기

https://news.v.daum.net/v/20201209100125154

 

월간산

[한국의 알피니스트, 아직 살아 있다 ⑲ 오영훈] "등반은 작은 에피소드들의 집합,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행위다"

글 이재진 편집장 사진 황문성 사진가, 오영훈 제공 입력 2020.12.09. 10:01
두 점 사이 최단거리를 수학적 개념으로 직선이라고 정의한다. 하지만 현실세계에서 직선으로 보일지라도 정밀 망원경으로 들여다보면 비뚤어진 곡선의 집합이다. 두 점 사이를 가장 짧게 이을 수 있는 방법은 자연계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두 점의 지름길은 결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진실은 산과 인간의 관계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고 보는 산악인이 있다.
2012년 여름 네팔에서 현지 연구 중인 오영훈. 셰르파 아이들과 함께.
정상만이 등반의 전부는 아니다
사람들은 왜 등반이라는 행위를 할까? 산은 인간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오영훈(42)에게 이 물음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는 대학 신입생 시절 친구 손에 이끌려 낯선 산악부 동아리에 가입했다. 그는 “동아리 골수 멤버들이 그렇듯 내 대학 생활의 유일한 의미는 산이었다”고 했다. 학부 전공(응용생물화학)엔 마음을 못 붙이고 복수 전공으로 선택한 인류학에 이끌렸다. 과거·현재·미래 인간의 삶과 행동양식을 탐구하는 문화인류학을 평생의 업으로 선택한 그는 범위를 좁혀 등반이 사람들에게 갖는 의미 찾기에 몰두하고 있다.
산악인이고 문화인류학자이면서 산악관련 매체에 발을 담근 언론인… 오영훈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한참동안 고민스러웠다. 하지만 빽빽한 이력서 칸 위를 흐르는 공통점은 ‘산’이다. 그에게 등반이란 오직 정상만을 쳐다보는 목표 지상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직선을 긋는 행위가 아니라 무수한 곡선을 쳐다보는 행위인 것이다. 이른 새벽 설레는 마음으로 등산화 끈을 매는 것, 함께 산에 오르는 동료와의 대화, 산행지 마을 주민들과의 교감, 산행 후 기울이는 막걸리 한잔… 산행 과정에서 경험하는 이런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이 모였을 때 등반은 비로소 의미 있는 것이 될 수 있다고 그는 생각한다. 이런 의미에서 그에게 중요한 두 가지 화두는 셰르파와 김창호이다.
2014년 1월 네팔 ‘랑탕 원더러스’ 원정 중에 나야캉가를 오르고 있다.
두 가지 화두, 셰르파와 김창호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리버사이드)로 유학을 떠난 그는 2012년부터 2014년까지 25개월간 네팔에서 현지 셰르파들과 함께 거주하고 함께 산을 오르면서 셰르파의 관점에서 본 히말라야 등반 연구로 박사학위를 땄다.
“많은 이들이 히말라야 등반은 서양인들이 주도하는 스포츠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틀린 말이다. 셰르파라는 등반사에 유례없는 직업을 만들고 이윤을 창출하고 독점해 온 네팔인들의 주체성을 간과한 오류다.
등반 중 일어나는 셰르파들의 희생을 서구 원정대의 탐욕 때문이라며 비난하는 입장과 ‘달러’를 벌기 위해 서양인들의 하인 역할을 자처하는 열등한 부류로 보는 시각 또한 마찬가지다.”
2007년 울릉도 송곳봉 개척등반 후 정상에서.
오영훈에게는 셰르파의 삶과 문화를 들여다보는 것이 에베레스트에 오르는 것만큼이나 의미 있는 작업이다.
그에게 네 개 중에 한 개를 고르라는 식의 질문은 통하지 않는 듯했다. 닮고 싶은 산악인이 누구냐는 필자의 우문에도 엷은 미소로 답을 대신했다. 그러나 대화 중 유독 자주 입에 올린 이름이 김창호였다.
2006년 에베레스트 등반 중. 왼쪽부터 오영훈, 이형모, 박영석, 오희준
지난 2018년 히말라야 등반 중 사망한 고 김창호 대장은 오영훈에 따르면 ‘자기 책임 하에 산에 오른다’는 등반 철학을 끝까지 지킨 인물이다. ‘등반대장 중에 자기 책임을 다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라는 필자의 말에 그는 “책임이란 자기가 감내할 만한 한계를 명확히 인지하고 그걸 지켜내는 것“이라고 했다. 탐욕은 상황 판단력을 흐리게 할 수 있고, 결국 인명사고로 이어지게 하는 씨앗이 되기 때문이다.
원정 등반에서는 전진보다 후퇴를 결정하는 것이 어려운 법이다. 오영훈은 “김창호는 항상 등반 공동체에 대한 의무에 대해 고민했다”며 “14좌 정복은 그에게 자기만의 스타일 등반을 지속해 나가기 위한 수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김창호는 2000년부터 2004년까지 1,400일 동안 파키스탄 고산지대를 단독 탐사하며 수많은 미답봉에 대한 자료를 수집했는데 그가 남긴 자료들을 바탕으로 김창호 평전을 쓸 계획” 이라고 덧붙였다.
2012년 봄 에베레스트 정상에 선 오영훈.
2013년 여름 네팔 셰르파 마을에서 현지 연구 중인 오영훈.
창의적 등반을 꿈꾸며
오영훈은 2002년 네팔 텐트피크와 임자체를 시작으로 2006년에 고 박영석 대장의 에베레스트 원정대에 참가했고, 2008년엔 키르기스스탄 악수 원정대장, 2012년 네팔 로체를 등정하는 등 2016년까지 히말라야와 러시아, 중앙아시아 등지의 고산을 올랐다. 기억에 남는 국내 등반으로 울릉도 송곳봉 상록길 개척(14피치, 5.10a, A2+)을 꼽았다. “바다에서 솟아오른 430m에 달하는 국내에서 가장 긴 암벽이다. 한국에선 보기 힘든 형태인데 2007년 동아리 후배와 둘이 1박2일에 걸쳐 등반한 게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는 “산악계의 등반이 너무 정형화돼 있다”고 지적했다. “기존 루트를 답습하는 패턴이 반복되면서 노백인우주선(북한산의 노적봉·백운대·인수봉·우이암·주봉·선인봉을 한 번에 등반하는 것) 같은 창조적인 등반을 찾아보기 힘들다”며 “조만간 설악산 토왕성폭포를 러닝빌레이식으로 등반한 뒤 곧바로 대청봉까지 올라보겠다”고 꾹 누르듯이 말했다.
등반의 문화인류학적 의미를 찾는 게 학자 오영훈이 디디고 선 땅이지만 등반의 추억담과 계획을 이야기할 때 가장 눈이 빛났다. 문文과 무武를 함께 갖춘 산악인이다.
2016년에 이어 2019년 미국 캘리포니아 인크레더블 헐크 등반.
소속
영국산악회The Alpine Club 회원
월간 산 기획위원
미국 아메리칸알파인저널 한국 통신원
직업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리버사이드)에서 인류학·종교학 강의
등반 경력
2002년 네팔 텐트피크·임자체
2008년 키르기스스탄 악수 원정대 등반대장
2009년 러시아 엘브루스
2012년 네팔 로부체·로체
2013년 네팔 에베레스트
2014년 네팔 랑탕지역 3개봉(랑탕 원더러스)
2016년 미국 캘리포니아 인크레더블 헐크